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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국민의 탄생


한국인이라면누구에게나 있는 공통의 경험이 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줄 지어진 책상에 앉아누르스름한 종이 위에 앉아있는 문제들을 맞이하여 벌이는일대 일 한판 승부. 바로 시험 이다.정해진 시간, 정해진 문제. 그시간 동안 우주에는 오로지 시험지와 나만 존재하는 듯, 오로지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하여 머릿속 모든 자원을 동원했던몰입의 순간들을 누구나 기억한다.시험이라는 게 워낙 우리 삶 속에공기처럼 존재하다 보니 너무 당연해서 인생의 시점시점마다 거기에 늘 시험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거기에 공기가 있었음을, 그것도 미세 먼지 가득한 나쁜 공기가 둘러싸고 있었음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여태껏 그 공기 때문에 콜록 거리면서도 효과 좋은 약만 생각했지, 애초에 공기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몰랐다.책은 한국인의 사회적 DNA에 각인된 이 시험 이라는 존재에 대해정말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그 역사부터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의미까지 두루두루 다루고 있다. 오늘날 시험은 좋게든, 나쁘게든 더 다면적이고 다층적으로 변모해 가고 있어 평가 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다. 책은과거시험부터 오늘날 입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사례부터 외국의 사례까지, 어린학생의 일기부터 학술논문까지시험에 관한전방위적인 자료를 밑바탕으로 쓰여졌다. 방대한 참고자료는 그 리스트만으로도 책 두께의10분의 일은 족히 차지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든 지루하게 읽었든 간에 시험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향한오랜 세월에 걸친 작가의 노고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시험이라는 것에 대해일종의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시험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시험 결과를 처리하는 데 시험평가자의 의견이 개입될 수 없다면, 그리고 일정 정도의 변별력을 갖추어 시험 결과의 서열화가 가능하다면,그 시험은 정의롭고 공평하다고 믿는다.시험 응시자가 시험을 선택할 수 있기에 시험에 대한 통제권이 있다고 믿는다.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여러가지 근거를 들어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모든 시험은,시대를 지배하는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된다. 시험은 국민을 통제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며 가장 싸고 가장 뒤탈이 없다.시험 권력자는 시험의 결과로 부여되는 사회적 보상이라는 당근을 가지고 시험의빈도와 시험 내용을 구미에 맞게결정한다.그런 상황하에서 누구도 그 시험의 타당성 에 대해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 시험의 실패와 성공 여부에 따라 보상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시험의질문이 정의로운지, 제시된 정답이 진짜 정답인지 따져 묻는 일이란 의식하기 조차 쉽지가 않다. 일제시대에 황국 신민의 소양에 대해 묻던 시험이, 영어 대신 국어 대신 일어능력을 강요하던 시험이 과연 그 시대를 살던 국민들에게 온당한 일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던 과거시험이시험 내적, 외적인 문제로 사실상 한양에 사는 양반들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처럼, 점차로 수시 비율을 높여가는 대학입시가 부모의 사회 경제적 문화적 자본과높은 정적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현재도 생각해 봐야 한다.시험이 그 자체로공정하고 정의롭기란 어려운 일이다.사람들이 시험에 대해 타당성이 없다던가, 시험이 요구하는 능력이나 소양이 올바른 것인지 하는비판의식을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많은 경우에 시험이 능력주의의 탈을쓰기 때문이다. 얼핏,능력에 따라 평가되고 평가된 결과에 따라 사회가 가진 자원을 차등 배분하는 시스템은 상당히 공정해 보이고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살펴보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아니라 가족이 가진 사회,경제적,문화적 자본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시험으로 엘리트계층이 된 사람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계층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으로국민을 통제하려는권력자들에 의해,시험은 그렇게 모두의암묵적인 동의하에온 국민을 줄로 세우는 서열주의를 강화하는 첨병의 역할을한다. 작가는서열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왜 사는가 왜 죽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와 같은 큰질문 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시험이 시험을 결정하고 출제하는 시험권력자의 통제하에서 움직이는 한, 서열화를 목표로 하는 시험은 채점의 문제 때문에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그런 진짜질문들을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인간의 성장이란, 배움이란 꼭 그렇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수년 뒤에 깨달음 이라는 이름으로 오기도 하고 어떤 내면의 변화는 타인에 의해 관찰될 수 없는 형태의 것일 수도 있다. 출제자가 제시하는 작은 질문들에 순종적으로 답을 할 때만이 보상이 주어지는 이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작가는 결국, 인공지능이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미래사회를 꿈꾸더라도, 현재의 시험은, 서열화를 목표로 하는 평가 시스템이라면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우리는 여태 시험이 던지는 문제에 충성스럽게 답을 바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시험준비를 하느라 청춘을 박제하고 가족의 삶을 저당잡으며 사회의 지배층, 권력자가 통제하고자 하는 대로 시험이 원하는 답을 내어주기위해 개인과 사회가 가진 모든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하는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질문이었다. 시험의 역사와 시험의 사회적, 정치적 함의들을 살펴보며 책속에언급되었던 시험이 양산한 그 수많은 부조리와 모순들은 모두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듯하다. 우리는 왜 한가지답만 해야 하는가. 답이 여러개일 수는 없는가. 나아가답이 아니라 질문을 할 수는 없는 건가.질문의 권리는 그 시대의 권력자에게 넘겨준 채, 여태 답의 노예로 살아왔다. 이제는 시험 권력자들로부터 질문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질문해야 한다. 대학에,국가에. 너의 질문은 타당한 것인가. 너의 정답은진정 정답인가.책은시험 없는 사회를 꿈꾼다.평가당하지 않는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값어치를 매기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며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평가의 권리는 소수 몇몇의 문제 출제자가가질 수 없다. 그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더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질문하고 원하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그런사회를 기원한다.
시험에 얽힌 풍성한 이야기와 시험의 의미를 되짚어낸 책

과거시험에서 학종부까지 시험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책. 천 년 세월 동안 과거시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양반의 삶과 국가권력,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 객관식 위주의 시험방법이 학교와 사회를 장악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에게 시험은 통제의 좁은 수로에 가두는 수단이자 그 수로를 타고 상승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에 따라 시험순응적인 몸과 의식이 되었고, 시험이란 일단 잘 쳐야 하는 국민 공통과제였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더 거슬러서는 조선 사람들에게 시험 이야기는 풍성한 서사구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시험에 울고 웃었던 가족과 개인들의 가장 내밀한 마음에서 권력구조까지 그야말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가 쌓였다.

뿐만 아니라 시험 이야기는 확장성이 넓다. 식민지 시기에는 시험 이야기가 민족적 저항과 순응을 담은 민족서사로 펼쳐지기도 하고, 개인의 인생만이 아니라, 사회의 기회 분배와 정의, 계급 재생산으로도 확장된다. 시험을 이야기하면 사회의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선발방식이 한 인간과 사회를 얼마나 바꾸어 놓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한 사회가 규정하는 인간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들어가며-국민의 서사, 시험
인생, 시험에 달렸다|시험, 한국인의 사회적 DNA|시험을 보는 두 개의 눈|왜 시험에 매달리는가

1. 권력이 설계한 인간의 역사

천 년의 역사, 과거시험
과거, 느슨하지만 강력한 통치방식|신분제와 유학사상이란 한계|천 개의 기술, 천 년의 생명력|‘성균관 우등생 우대’ 내신제도도|치열한 시험공부, 교묘한 부정행위|갈수록 끓어오른 개혁론|과거시험, ‘기형적 조숙’이었는가
[중국은 어떻게 과거시험을 발명했나]

새로운 시험의 세기
과학의 개입: 지능검사와 선다형 문제|지능검사 확산의 기폭제, 한국전쟁|세계, 시험으로 통하다
[주요섭, 1930년에 지능검사와 객관적 고사법을 주장하다]

‘꺼삐딴 리’의 세상, 외국어시험
입신출세의 지름길, 외국어 공부 붐|경성제대 합격도 일어 점수에 달려|전쟁 채비 입시에서 영어시험 빼라 |해방과 더불어 ‘온영어만능시대’|영어, 능력 서열화의 잣대

시험의 탄생과 소멸에 대하여
대한민국, 시험천국? 시험지옥?|시험 흥망성쇠의 주역은 국가|관건은 공정한 기회 부여
[구슬시험도 중시한 유럽]

2. 서열화와 배제, 그리고 저항

서열주의는 힘이 세다
능력주의 탈을 쓴 서열의 폭력성|석차, 지위 배분의 기준이자 통제 수단|성적일람표와 배치표의 악몽|평생의 멍에, 수능시험 성적|모두를 멍들게 하는 억울하면 출세하라

신분상승 고속열차, ‘고시’의 명암
사법시험 경쟁률 500대 1 넘기도|‘개천의 용’ 타령은 사회적 폭력
[과거시험 합격, 어사화를 꽂고 꽃길로]

시험에서 배제된 자들
재혼녀의 자식도 과거시험 불허|소아마비 이유로 법관 임용 거부되기도|시위경력자들의 합격을 막아라

‘여풍女風’은 시험을 타고
장벽 깬 신여성들, 교단 진출로 ‘숨통’|고등고시 여성 합격생 1951년 처음 탄생

저항의 수단이 된 시험
과거시험 거부에서 ‘투명가방끈 운동’까지|시간강사들의 무기, 성적 입력 거부
[경성제대 학생들, 문관고등시험을 앞에 두고]

3. 쉬운 통제를 꿈꾸다, 교육을 대체한 시험

더 많이, 더 객관적으로, 더 어렵게
치고 또 칠수록 학습효과 좋다?|시험의 세 담론: 객관성, 공정성, 변별력(비리도 막고 비용도 줄이고|실력에 의한 평가라는 허울|한 줄로 세워라)
[문제풀이 전사들, 얼마나 많은 문제를 푸나?]

시험과 내신의 엇갈린 역사, 대학입시
현재에 주목하는 시험, 성장에 눈 돌린 내신|국가, 대학입학시험을 탐하다|그때그때 달라진 대학입학시험|내신,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내신, 공정성 논란 딛고 제도화의 길로|시험과 내신, 공존의 그늘
[체력장, 입학시험에 들어오다]

하나의 시험, 두 개의 관점: ‘일제고사’
국가 주도 시험, 학생·교사 반발 불러|일제고사의 위력, ‘성취도 평가’ 명분 삼켜|시험결과와 책무성 논쟁|일제고사 논쟁으로 읽는 사회
[일제고사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나]

길이 남을 시험 사건들
‘스페셜 케이스’ 이강석|무즙 파동과 창칼 파동: ‘치맛바람’ 뒤에 숨은 권세들|소수점 반올림에 울고 웃어|시험 엄숙주의를 깬 엽기 시험
[과거제 폐지 이후, 신식학교들의 입학시험 풍경]

4. 전부를 걸어 출세하라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가
한때는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예나 제나 내 가족을 위하여|결국은 안정된 삶을 위하여|운명의 그날, 시험일

모로 가도 서울만…… 컨닝의 유혹
고등고시에서도 ‘방망이질’|컨닝 처리의 딜레마|다시 생각하는 컨닝
[김구, 과거시험장에서 다른 길을 꿈꾸다]

시간과 싸워라
시간관리 전략의 내면화|시험, 시간과의 전쟁|빨리 더 빨리, 속도도 능력|법정으로 간 시험시간

청춘을 박제하라
두 갈래 길 앞에 선 청춘|취업으로 가는 길: 스펙과 시험|‘고시족’의 자발적 유배지, 노량진|어디나 ‘노량진’, 희망고문 당하는 청춘들
[ 고시병은 내가 아니라 아내가 걸려 ]

시험과 전투적 교육가족
수험생 자녀를 ‘섬기는’ 가족들|경쟁적 교육투자의 부작용|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 통로|부정입학·위장전입 등 반칙도 불사|‘강남신화’와 ‘강남엄마 괴담’이 나란히|미친 교육과 국가부재에 대한 경고장

시험과 소멸되지 않는 개인기록들
개인의 것이 아닌 개인기록|개화기 때는 관보에 학생성적 싣기도|찢고 변조하고 훔치고…… 성적표의 수난|공적 기록의 대상이 된 개인들|저인망식 학교생활기록부는 폭력

5. 해방적 평가와 평등사회

평가의 밖에서 다시 생각하기
평가의 두려움 알아야|평가의 기준·정당성 따져봐야|‘작은 인간’들을 만드는 시험|‘큰 질문’을 하는 참여형 인간으로
[종합적 평가, 언제 등장했는가]

탐구와 성장을 위한 교육평가의 개혁
사회정의의 의식적 실천, 네덜란드식 선발|시험 없는 입학을 고민할 때다|지적 해방의 출발점은 정답 아닌 물음|수행평가의 양면성과 참평가운동|자기평가 능력을 키워야|피드백, 평가의 심장이자 학생의 권리|평가의 윤리와 평가 소양교육
[ 요즘은 뒤늦게 공부 잘 하기가 어렵지요 ]

평등한 사회를 위해 평가의 밖으로
시험의 밖에 선 새로운 역사|평가권한을 분산시켜야|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 그 우연성에 대하여|모든 이에게 쉬고 배울 권리를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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