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달린 허클베리 핀
세 번째 보는 허클베리 핀
나는 현재 이 작품을 세 번째 보고 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때
삼중당 문고본으로 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고, 두 번째는
민음사판 세계문학에서 나온 김욱동 교수 역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이 될 『주석달린
허클베리 핀』이다.
처음 초등학교 때 본 허클베리 핀은 내 인생의 큰 상처였다.
당시 내가 기대한 허클베리 핀은 『톰 소여의 모험』에서 보여준
신나는 모험의 연장선이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기대였다.
왜냐하면 헉은 톰의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
그래서 어린 마음에 허클베리 핀의 화끈한 모험을 기대하며 빽빽한
세로 판형의 삼중당 문고본을 사서 보았는데... 이건 뭐, 이야기가
재미나게 전개될만 하면 이상하게 꼬이고, 이차저차 새로운 모험이
시작할 만하면 복잡하게 심각해지는 짜증나는 스토리의 연속이었다.
요즘 말로 이건 아니잖아 였던 거다.
당시 내가 즐겨 소화했던 스토리 라인은 주로 요즘 드라마 스토리와
비슷한 『소공자』, 『왕자와 거지』, 『조웅전』, 『장화신은 고양이』,
『플루타크 영웅전』(물론 어린이용), 좀 더 나가면 『날으는 교실』
등의 이를테면 선악 구도와 해피엔드의 결말이 잘 짜여진 작품들이었다.
바로 엊그제 끝난 <시크릿 가든>이야말로 내가 어린 시절에 즐겨 읽던
동화들의 연장선에 있다. 아, 인어 공주에 대한 그 깜찍한 패러디라니...
톰과 헉은 근본이 다르다
한참 후에 알았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톰 소여의 모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작품이었다. 그건 두 소년의 집안 환경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톰 소여는 말하자면 어느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악동이었다.
‘모든 도시, 마을 시골 동네마다 있는, 약삭빠르고 얼굴 가득 떫은 인상에
기회가 되면 언제나 서커스 천막 밑으로 기어들어가거나... 개에게 운동을
시켜준다고 통조림 깡통을 꼬리에 매달아 주는...’(해설 중에서) 그런 악동인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든 어른이든 톰 소여의 모험을 신나게 재미있게
아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은 다르다. 이 녀석은 일단 어른들이 극도로 싫어한다.
자기 자식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마을에서
영원히 내쫓고 싶은 그런 녀석인 것이다.
‘헉은 버림받은 아이로 추위, 배고픔, 가난, 굴욕을 익히 겪었으며,
그 지역사회의 상류층에 자연스러운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헉은
세인트피터스버그 사회에서도 최하층이지만 그는 그 마을에서 단
한 사람의 진정으로 독립적인 인물이다. 따라서 톰 소여와 달리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책벌레이며 낭만적인
톰 소여와는 달리, 그는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순박한 사람의 맑은 눈으로 세계를 바라
본다... 이 소설에는 19세기 말 당시의 가정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사람조차도 위협할 만한 훨씬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해설 중에서)
말하자면 어른들의 세계가 만든 도덕 체계, 인습 체계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반문화, 반문명적인 캐릭터가 허클베리 핀이다. 여기서 톰과 헉의
세계가 갈라진다. 톰은 어찌됐든 교육가 교화를 통해 결국은 체제 내로
들어올 캐릭터인 것이고, 헉은 근본적으로 기존 문명에 융화될 수 없는
반문명적인 캐릭터였던 것이다.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에서 비롯됐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이런 두 작품의 차이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허클베리 핀을 톰 소여의 후속편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허클베리 핀이 얼마나 ‘반체제’적인 작품인지는 당시 작가에게 보낸
어느 소녀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저는 열한 살이고, 메릴랜드 주 록스빌 근처의 농장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우리 집에는 존이라는 남자애가 일꾼으로 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헉 핀』을 읽어보라고 줬더니, 그 애는 어느 날 밤 창문 너머로
시트를 타고 내려가 도망쳐 버렸습니다. 나중에 듣기론 오하이오 주에
있다고 하더군요....’(해설 중에서)
다행히도 난 초등학교 때 이 소설을 읽고 어느날 밤 창문 너머로 시트를
타고 도망치는 모험을 단행하지는 않았다. 그건 내가 행복한 가정의
아동이라기 보다는(물론 불행한 아동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일단 톰 소여처럼 재미난 모험극이 아니라는 데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물론 난 반문명적이거나 반체제적인 인간이 ‘불행하게도’ 아니었다.
하여튼 나이를 먹고도 ‘철이 덜 들어’ 문학에 계속 관심을 두게 되면서
허클베리 핀에 대한 여러 풍문을 듣게 되었다.
일단은 내가 무척 존경하는 헤밍웨이 선생께서 이 작품을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현대 미국문학은 모두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라는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그만큼 훌륭한
작품은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또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최초의 시선이다... 그는
인간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워싱턴 대학에서 월트 휘트먼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고는 한가지 요구조건으로 마크 트웨인의 고향에 잠시 들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거기서 ‘마크 트웨인이 지닌 힘의 원천인 미시시피 강’에
가서 한번 손을 담가보고는 “자, 이제 여행은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물론 이 주석본에 실린 해설에서 인용했지만,
이 작품이 아동의 모험극 수준이 아닌 문명과 도덕, 선과 악을 다루는 대단한
문제작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할
충분히 시간이 지났다고 판단된 순간, 나는 민음사판 세계문학 시리즈의 하나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 작품이 ‘고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고전의 정의에
대해서는 마크 트웨인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누구나 격찬하지만 결코 읽지는 않는 책”이라고.
이 말은 고전이 읽기에 난해하다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은 누구나 대충 그 내용을
알고 있기에 읽으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된다. 허클베리 핀,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톰 소여의 친구니까.
내게 주석본이 필요한 이유
이 작품은 절대 난해하거나 읽기 어려운 작품이 아니다. 사실은 수많은 사건들이
연속되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쉴 틈없이 이어지는 재미난 이야기의 보고다.
그러나 그 풍부한 이야기의 구슬들을 유의미하게 꿰어 맞추기 위해서는 그 당시
노예제도와 연관된 미국 남부의 독특한 지역색과, 미시시피 강이라고 하는 지역적
특색에 대한 시대적 관점 및 문화적 관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내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그걸 몰라도 이 작품을 읽고 당근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유홍준 교수 말마따나 아는 만큼 보인다지 않는가.
그건 내가 무식한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으로서 150년 전
미국 남부 미시시피 강 유역의 독특한 지방색과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우리 조상의 100년 전 일상도 제대로 모르는 처지에...
그래서 이 『주석달린 허클베리 핀』이 나왔을 때 나는 만세를 불렀다.
사실 나는 소설을 볼 때 주석을 참조하는 그런 재수없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주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내가 그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만끽하고 싶을 때 이 주석들은 아주 유용할 것 같다.
가령 ‘그런데 과부댁도 코담배는 했다’(242)는 부분에 대해 주석은 ‘당시 그 지역
에서는 여성이나 소녀가 계층과 나이에 상관없이 코담배를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다...’고 되어 있고 ‘짐은 항상 자기 목에 5센트 동전 하나를...’(268)에
대해서는 ‘시대착오적인 대목이다. 5센트 동전은 남북전쟁 이후에나 처음 생겼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주석은 매우 간단한 항목의 예를 든 것이고
어떤 것은 단어 하나에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 장문의 주석이 달리기도 한다.
그런 황당한 주석들이 나는 무척 반갑다. 이번에 세 번째 읽는 허클베리 핀을
나는 아주 오래동안 읽을 생각이다. 주석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허클베리 핀이라는
문제적 소년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구석구석 여행하면서 세세하게 관찰할 것이다.
P.S 참고로 이 책의 앞부분에 있는 주석자의 해설은 자그마치 2백 페이지가
넘는데 진짜 흥미진진하다. 허클베리 핀에 얽힌 거의 모든 이야기가 여기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당대 미국의 출판 시장과 관련한 다채로운 풍경들과
마크 트웨인의 정열적이면서도 기이한 면모들을 온갖 자료들을 통해 증언
하고 있다. 감히 권한다면 ‘해설’ 부분을 먼저 읽고 본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 경험으로는 훨씬 흥미롭다.
책값이 무척 비싸지만 따지고 보면 앞부분의 ‘해설’은 따로 단행본 한 권으로
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깊이 읽기
현대 미국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을 상세한 주석과 함께 다시 읽는다. 초판본 텍스트를 그대로 수록했을 뿐 아니라, 풍부한 자료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한 상세한 주석까지 함께 실려 있다. 마크 트웨인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인 해설은 마크 트웨인의 생애와 이 소설의 출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정황을 설명함으로써 이 책에 대한 보다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은 미국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 꼽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일종의 유머 소설, 아동 소설로 이해했고, 심지어 경박하고 아이들에게 해로운 소설로 평가되어 금서로까지 지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가 이전까지는 전혀 파헤칠 수 없었던 작품 속의 문학적, 역사적 주제를 담아냄으로써 그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 단순한 악동 소설 이 아닌 위대한 작품임을 증명해준다.
해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제1장 헉 문명인으로 만들기 - 왓슨 양 - 톰 소여가 기다린다
제2장 짐을 피해간 소년들 - 톰 소여 갱단 - 계획을 세우다
제3장 철저한 조사 - 멋진 승리 - ‘톰 소여의 거짓말 가운데 하나’
제4장 헉과 판사 - 미신
제5장 헉의 아버지 - 훌륭한 부모 - 교화
제6장 새처 판사를 찾아가다 - 헉, 떠날 준비를 하다 - 정치경제학 - 몸부림을 치다
제7장 그놈을 겨냥하고 있었지 - 오두막을 잠그다 - 시체를 빠트리다 - 휴식을 취하다
제8장 숲에서 잠을 자다 - 시체 떠오르게 하기 - 섬 탐험 - 짐을 발견하다 - 도망친 짐 - 흔적 - ‘발럼’
제9장 동굴 - 떠내려 온 집
제10장 횡재 - 행크 벙커 영감 - 변장하다
제11장 헉과 여자 - 수색 - 속여 넘기다 - 고셴으로 가는 중
제12장 느린 뱃길 - 물건 빌려오기 - 난파선에 오르다 - 음모자들 - 보트를 구하다
제13장 난파선에서 탈출하다 - 야경꾼 - 침몰
제14장 대체적으로 즐거운 시간 - 하렘 - 프랑스어
제15장 뗏목에서 떨어진 헉 - 안개 속에서 - 뗏목을 찾아낸 헉 - 쓰레기
제16장 기대 - 선의의 거짓말 -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다 - 케이로를 지나치다 - 강가로 헤엄쳐 나오다
제17장 저녁의 방문 - 아칸소의 농장 - 집안 풍경 - 스티븐 다울링 보츠 - 시적 토로
제18장 그레인저포드 대령 - 귀족 - 숙원 - 성경책 - 뗏목을 되찾다 - 목재더미 - 돼지고기랑 양배추랑
제19장 낮에는 뗏목을 묶어두고 - 천문학 이론 - 금주 갱생 집회를 열다 - 브리지워터 공작 - 왕족들의 알력
제20장 헉의 설명 - 출정을 안출하다 - 천막집회를 찾아가다 - 천막집회에 나타난 해적 - 인쇄공이 된 공작
제21장 검술 연습 - 햄릿의 독백 - 마을 돌아다니기 - 게으른 마을 - 보그스 영감 - 죽음
제22장 셔번 - 서커스를 구경하다 - 원형무대의 주정뱅이 - 스릴 넘치는 비극
제23장 ‘낚였다’ - 왕족들의 비교 - 향수를 느끼는 짐
제24장 왕의 의상을 입은 짐 - 손님을 태우다 - 정보를 얻다 - 가족의 슬픔
제25장 저게 그 사람들인가? - ‘송영’을 부르다 - 겁나게 공정한 - 장례 분탕질 - 잘못된 투자
제26장 경건한 왕 - 왕의 성직 - 용서를 빌다 - 방 안에 숨다 - 헉이 돈을 가져가다
제27장 장례식 - 호기심을 만족시키다 - 헉을 의심하다 - 이익이 적어도 빨리 팔아치워야 하는 법
제28장 영국 여행 - ‘짐승 같은!’ - 메리 제인이 집을 떠나기로 하다 - 메리 제인과 작별하는 헉 - 볼거리 - 이의 제기자
제29장 의문시되는 친척관계 - 왕이 도난 사실을 설명하다 - 필적에 관한 의문 - 시체 파내기 - 도망친 헉
제30장 헉을 야단치는 왕 - 왕족 간의 싸움 - 상당히 거나해서
제31장 불길한 계획 - 짐의 소식 - 옛 일을 회상하다 - 양 이야기 - 귀중한 정보
제32장 조용하고 일요일 같았으며 - 다른 사람으로 오해되다 - 궁지에 몰리다 - 딜레마에 빠지다
제33장 깜둥이 도둑놈 - 남부 인심 - 아주 긴 감사기도 - 타르와 깃털 세례
제34장 재 호퍼통 옆의 오두막 - 터무니없는 일 - 피뢰침 기어오르기 - 마녀 때문에 생긴 고민
제35장 정식대로 탈옥하기 - 음침한 계획 - 훔치기의 차이 - 깊은 구멍
제36장 피뢰침 - 용을 쓰다 - 후세에 맡길 일 - 전문가
제37장 마지막 셔츠 - 멍하니 주위를 돌아다니다 - 출항 명령 - 마녀 파이
제38장 문장 - 숙련된 지휘관 - 불유쾌한 영광 - 눈물겨운 주인공
제39장 쥐 - 번잡스러운 감방 친구들 - 밀짚 허수아비
제40장 낚시 - 불침번 모임 - 유쾌한 도주 - 짐이 의사를 불러오라고 말하다
제41장 의사 - 사일러스 이모부 - 호치키스 자매님 - 샐리 이모의 걱정
제42장 부상당한 톰 소여 - 의사의 설명 - 톰이 고백하다 - 폴리 이모 도착하다 - ‘편지를 건네주다’
마지막 장 자유롭게 풀려나다 - 포로에게 대가를 지불하다 - 여러분의 친구, 헉 핀
부록 A 짐과 시체
부록 B 뗏목 에피소드
‘우리도 좀 쉬자’ - 시체 제조기의 외침 - ‘재앙의 자식놈’ - 양쪽 모두 우유부단하다 - 꼬맹이 데이비가 끼어들다 - 싸움이 끝나고 - 에드의 모험 - 뭔가 이상한 것 - 귀신 붙은 나무통 - 나무통이 폭풍을 몰고 오다 - 뒤쫓아 오는 나무통 - 번개에 사람이 죽다 - 올브라이트가 참회 - 화를 내는 에드 - 뱀이냐 사내아이냐 - - ‘그놈 자식 끌어내자구’ - 쾌활한 거짓말 몇 가지 - 강물 속으로 뛰어들다
역자 후기